마리아 칼라스와 레나타 테발디
그녀들이 원했건 원치 않았건 라이벌 관계에서 파생된 불화는 두 사람의 관계를 오래도록 서먹하게 하였다.
사진은 1968년 뉴욕 메트에서 칠레아의 오페라 <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> 공연을 마친 테발디를 무대
뒤로 칼라스가 찾아와 서로 포옹하는 모습이다. 이렇게 서로 화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
결국에는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모습이 아름답다.
메트 경력만 따진다면 비교조차 불가능한 것이, 테발디는 1955년 <베르디 <오텔로>의 데스데모나로
푸치니 <라 보엠> 1964년 3월 14일 뉴욕 메트 실황
미미 - 레나타 테발디 (Renata Tebaldi)
로돌포 - 산도르 콘야 (Sandor Konya)
The Metropolitan Opera Orchestra & Chorus
Fausto Cleva
테발디의 등장에 관객들의 환호로 공연이 잠시 중단된다. 그 이유는 유형종의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.
테발디는 소프라노로는 음역대가 높지 않은 편이었다. 한때 벨칸토 오페라나 <라 트라비아타>를
자주 불렀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. 이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테발디에게는 몇 번의 위기가
있었다. 가장 널리 알려진 위기는 1963년 초에 일어났다. 메트에서 프랑코 코렐리와 함께 수십 년 만에
리바이벌되는 <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>를 부르기로 했는데 연습과정에서 고음을 낼 수 없게 된 것이다.
테발디는 단호하게 시즌의 모든 공연 일정을 취소하고 잠적해버렸다. (이 부분의 서술이 부정확하다.
테발디는 그해 루쿠브뢰르 공연을 모두 마치고 물러났다.) 그리고 13개월 후에 <라 보엠>으로
메트에 컴백한다. 모든 트러블은 사라져 정상으로 돌아왔고 그간 연기력을 연마한 모양이라는 찬사마저
들었다. 미국에서 인기는 더욱 올라갔으며 미스 솔드 아웃 MISS SOLD OUT(매진)이란 별명도 얻었다.
<불멸의 목소리> 카리스마보다 부드러움- 레나타 테발디 (유형종 P 135-136)
위 공연은 유형종이 언급한 테발디의 메트 복귀 바로 그 순간이다.
토스카 - 마리아 칼라스 (MARIA CALLAS)
카바라도시 - 프랑코 코렐리 (FRANCO CORELLI)
The Metropolitan Opera Orchestra & Chorus
Fausto Cleva
그러나 저 환희와 갈채를 뒤로하고 무대를 내려왔으때 예술가들이 느꼈을법한 긴 고독은 어떤 것일까.
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...
* 주의 : 줄창 박수와 환호성만 들리는 글 ^^